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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기술로 세계를 열다: 에이비엘바이오와 알테오젠의 사례
최근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기술이전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있다. 그 중심에는 에이비엘바이오와 알테오젠이 있다. 이들은 단순히 신약 후보 물질을 넘어서, 글로벌 대형 제약사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플랫폼 기술'을 수출하는 데 성공하며 세계 제약 산업에서 기술력을 입증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영국 GSK와 4조 원이 넘는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며, 뇌혈관장벽(BBB)을 통과할 수 있는 ‘그랩바디-B’ 기술을 수출했다. 이는 IGF1R 수용체를 타깃으로 해 혈액-뇌 장벽을 보다 효과적으로 통과할 수 있게 만든 기술로, 기존 TfR 기반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신경계 질환 치료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뇌에 전달할 수 있어,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분야에서 응용 가능성이 크다.
알테오젠 역시 아스트라제네카와 약 2조 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며 이목을 끌었다. 핵심은 기존 정맥주사를 피하주사(SC)로 전환할 수 있는 ALT-B4 기술이다. 이 기술은 히알루론산을 분해하는 효소를 이용해 약물이 빠르게 흡수되도록 도와주며, 환자가 복용하는 시간과 불편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예컨대 기존 항암제 정맥주사가 4~5시간 걸렸다면 ALT-B4 기반 피하주사는 5분 이내에 투여가 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편의성 개선을 넘어, 제약사 입장에서는 제형 변경을 통해 특허를 연장하거나, 경쟁 제품과의 차별성을 확보하는 전략적 무기로 작용할 수 있다. 머크, 산도즈, 다이이찌산쿄 등 글로벌 빅파마들이 이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두 기업의 사례는 국내 바이오 기업이 단순히 임상 단계 후보물질을 기술이전하는 것을 넘어서, 범용적이고 응용 가능한 플랫폼 기술을 통해 세계 무대에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술이전 규모도 수천억 원을 넘어 조 단위로 커졌고, 계약 내용도 단순한 기술 판매가 아니라 임상 및 상업화 마일스톤, 로열티 등으로 이어지는 장기적인 수익 구조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단기적인 계약에 그치지 않고, 향후 수년간 매출을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이 되며, 글로벌 파트너십 확대의 마중물 역할도 한다. 이제 한국 바이오 기업들은 세계 제약 시장에서 독창적인 기술을 가진 파트너로 인식되고 있으며, 기술 경쟁력이 글로벌 스탠다드를 이끄는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글로벌 빅파마가 플랫폼 기술에 주목하는 이유
에이비엘바이오와 알테오젠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흐름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단순한 신약 개발보다 플랫폼 기술 확보에 더욱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플랫폼 기술이란 특정한 병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치료제나 적응증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한다. 이는 신약 파이프라인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빅파마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요소다. 예컨대 BBB 셔틀 기술은 다양한 뇌질환 치료제에 적용할 수 있고, 피하주사 전환 기술은 모든 정맥주사 기반 약물에 적용 가능하다. 즉, 한 번의 기술 확보로 여러 제품군에 걸쳐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플랫폼 기술은 신약 개발의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전략적 자산이기도 하다. 기존에는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막대한 비용과 임상 실패의 리스크가 존재했다. 하지만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파트너와 협업하면, 신약 개발 초기 단계부터 다양한 시도를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고, 이미 임상 데이터를 보유한 기술을 활용해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글로벌 제약사들은 내부 R&D만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외부 기술 도입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려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하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나 알테오젠처럼 이미 임상 단계에 진입한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플랫폼 기술은 기존 약물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ALT-B4처럼 제형 변경이 가능한 기술을 활용하면, 이미 특허 만료가 임박한 약물도 새로운 제형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으며, 이는 매출 연장뿐 아니라 시장 점유율 유지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런 전략은 블록버스터 신약을 보유한 대형 제약사에게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한국 바이오 기업이 이런 플랫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단순한 기술 수출을 넘어서, 글로벌 제약사들과의 전략적 협업을 주도할 수 있는 중요한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이는 한국 바이오 산업이 단순 수탁 생산이나 위탁 개발에서 벗어나 기술 기반의 주도적인 위치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기술이전이 여는 바이오 산업의 새로운 미래
에이비엘바이오와 알테오젠의 기술이전은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실적 개선과 주가 상승 등의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더 중요한 의미는 한국 바이오 산업 전체의 국제 경쟁력 제고에 있다. 이들 기업의 성공 사례는 향후 유사한 기술을 가진 중소 바이오 기업들의 투자 유치, 파트너십 확장, 글로벌 진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플랫폼 기술은 한 번의 기술이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파이프라인에 반복적으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후속 계약 가능성도 높다. 이런 점에서 기술이전은 단순한 '기술 판매'가 아니라, 글로벌 바이오 생태계에 국내 기업이 진입하는 관문이자, 네트워크 확장의 시작점이라 볼 수 있다.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이러한 성공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뿐 아니라, 임상 전략, 규제 대응, 글로벌 파트너십 역량 강화 등 전반적인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규제 기관 요구사항을 충족할 수 있는 수준의 임상 데이터와 품질 관리 시스템이 요구되며, 이를 위해 정부의 R&D 투자 확대와 글로벌 임상 경험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더불어 인력 양성, 해외 진출을 위한 네트워크 지원, 글로벌 바이오 전시회 참여 등의 간접적인 지원도 중요하다. 바이오 산업은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태계를 육성하는 전략이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 기반 기업이 시장에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기술이전 계약 자체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해당 기업의 기술력, 전략, 실행력 등을 평가받는 지표가 되어야 한다. 시장에서는 기술이전 규모와 함께 실제 임상 진행 여부, 상업화 가능성, 글로벌 파트너사와의 협업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한국 바이오 기업들은 단순히 '계약 체결'에 만족하지 말고, 그 이후의 후속 실행까지 철저히 준비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 바이오 산업은 더욱 성숙하고,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기술 중심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