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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금리 부담 속 늘어나는 직장인 평균 부채
대한민국 직장인 한 명이 짊어진 평균 부채가 5150만원에 달했다는 통계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숫자다. 2023년 말 기준 임금근로자 1인당 평균 대출금액이 5150만원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단순히 대출을 받는 이들이 늘었다는 것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직장인의 재무 건전성 악화를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2022년 금리 인상으로 일시적으로 감소했던 대출이, 2023년 다시 증가세로 전환되었다는 점은 금리에 대한 내성이나 주거와 관련된 소비가 얼마나 탄력적으로 작용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직장인의 평균 부채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큰 요인은 여전히 높은 주거 비용이다. 특히 수도권 중심으로 치솟은 전세금과 매매가, 그리고 이를 감당하기 위한 주택담보대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직장인들은 빚을 지고서라도 집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여기에 더해 자녀 교육비, 생활비 부담, 금리 부담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연체율이나 가계부채 총량은 아직 위기 수준은 아니지만, 이러한 부채 구조가 언제든 경제적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특히 평균 부채가 5000만원을 넘는다는 것은 단순히 ‘일시적 대출’을 넘어서 ‘구조적 대출 시대’에 진입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주택 마련이나 사업자금 등 특정한 목적이 있을 때만 대출을 받았지만, 이제는 일상적인 생활비와 생계 유지, 자산 형성을 위한 필수 수단으로 대출이 기능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빚이 많다’는 문제보다는 그 빚이 어떤 이유로 발생했는지, 상환 능력이 있는지, 그리고 전체적인 금융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연령·소득·주거유형에 따라 달라지는 대출 양상
직장인의 평균 대출 규모를 연령대로 구분해 보면 40대가 7790만원으로 가장 높고, 이어 30대가 6979만원, 50대가 5939만원 수준이다. 이는 인생에서 경제적 지출이 가장 많은 시기가 30~40대임을 방증한다. 이 시기에는 내 집 마련, 자녀 양육비, 차량 구매, 노후 준비 등 큰 지출 항목이 집중되는 만큼, 대출이 불가피한 선택으로 작용한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이 확산되면서 젊은 세대에서도 무리한 대출을 감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는 미래의 소득을 담보로 현재의 주거와 생활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장기적으로는 상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존재한다.
주거유형에 따른 대출 격차도 뚜렷하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직장인의 평균 대출은 6265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연립·다세대 주택이나 오피스텔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아파트가 여전히 가장 선호되는 주거 형태인 동시에, 집값이 가장 비싼 유형이기 때문이다. 특히 부동산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아파트 매매 시 필연적으로 대출이 따라붙게 되는 구조다. 문제는 이러한 대출이 자산 가치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 빚만 남을 수 있다는 점이다. 주택 구입은 장기적인 투자인 동시에 큰 리스크를 동반하는 소비 결정이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소득에 따라 대출 여력과 구조도 완전히 달라진다. 연소득 1억원 이상 고소득자의 평균 대출은 무려 1억 5703만원에 달했는데, 이는 투자 성향과 관련이 깊다. 이들은 높은 신용 등급과 안정적인 직장을 바탕으로 레버리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소득 3000만원 미만의 저소득층은 평균 대출이 2482만원으로 적지만, 연체율은 13.2%로 가장 높았다. 이는 같은 금액을 빌리더라도 상환 여력이 부족할 경우, 재무 건전성이 심각하게 악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대출은 단순한 액수보다 ‘소득 대비 부담 가능성’이라는 기준에서 접근해야 한다.
회사 규모에 따른 대출 여건의 차이
직장인의 대출 규모는 근무하는 기업의 크기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대기업 근로자의 평균 대출은 7782만원으로, 중소기업 근로자의 평균 대출인 4299만원보다 약 80% 가까이 많았다. 이는 단순한 소득 차이뿐 아니라, 금융기관의 신용평가 방식이 직장의 안정성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대기업 근무자는 안정적인 수입과 고용 유지 가능성을 기반으로 더 많은 금액을 더 낮은 금리로 빌릴 수 있는 반면, 중소기업 근로자는 한도도 낮고 조건도 불리한 경우가 많다. 이는 금융 접근성에 있어 명백한 불균형 구조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연체율에서도 이런 격차는 그대로 드러난다. 대기업 직원의 연체율이 0.28%였던 데 반해, 중소기업 근로자의 연체율은 0.82%로 세 배 가까이 높았다. 이는 중소기업 직원들이 외부 충격에 더 민감하고, 위기 상황에서 버틸 여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지표다. 특히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거나 부동산 시장이 불안정할 경우, 이들 계층의 재정 위험도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같은 직장인이지만, 금융 신용 체계 내에서의 대우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 이 지표 하나만으로도 명확해진다.
결국 직장인의 대출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인 과제다. 누군가는 같은 조건에서 더 많은 돈을 낮은 금리로 빌릴 수 있고, 누군가는 적은 돈도 어렵게 빌리며 연체의 위기에 놓인다. 이는 금융 시스템이 직장인의 소득 구조, 고용 안정성, 신용 등급 등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실이다. 대출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어떻게, 어떤 조건으로 대출이 제공되고 있는지를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일이다. 직장인 평균 부채 5150만원이라는 수치는 지금 대한민국의 가계 구조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알려주는 경고음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