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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마와 C-PTSD 극복을 위한 자기이야기 치료법, 왜 말해야 치유되는가?
트라우마와 복합 PTSD(C-PTSD)의 회복법을 알기 쉽게 설명합니다. 상처받은 나를 치유하는 이야기의 힘을 알려드립니다.
트라우마란 무엇인가: 오해받는 외상의 진짜 의미
길을 걷다 보면 "그거 나한텐 트라우마야"라는 말을 쉽게 듣게 됩니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 트라우마(trauma) 는 단순히 마음이 상한 경험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받는 정도의 심각한 외상 상황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심한 학대, 전쟁, 성폭력, 자연재해처럼 삶이 흔들리는 경험이 해당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었다’는 감정을 트라우마로 혼동합니다. 물론 힘든 경험은 분명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심리적 외상은 우리의 뇌와 신경계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충격이라는 점에서 차원이 다릅니다. 그리고 이런 진짜 트라우마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장기간 반복되면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C-PTSD) 라는 더 복잡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도 스스로 “난 참 많이 망가졌다” 느낀 분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망가진 게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생존 본능일 수 있습니다. 진짜 필요한 건 바로, 그 경험을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힘’ 입니다.
감정 조절의 어려움과 자기 왜곡, C-PTSD의 신호들
C-PTSD는 단순히 슬픈 일이 반복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신뢰하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거나, 반복적인 학대, 사회적 고립을 겪으며 서서히 형성됩니다. 이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감정 조절 능력입니다. 아무 이유 없이 분노하거나, 반대로 감정을 완전히 차단해 무감각해지는 일이 생깁니다.
또한 C-PTSD의 특징 중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왜곡된 인식입니다. “나는 원래 잘못된 사람이다”, “내가 이 고통을 받을 만해서 그런 거다”라는 식의 생각이 마음속을 점령하게 됩니다. 그 결과, 사람을 믿기 어렵고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 상태는 결국 우울, 무기력, 사회적 단절로 이어집니다.
이런 심리상태는 나약함의 상징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이 얼마나 오랜 시간 견뎌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다시 연결하고 치유하는 열쇠는 ‘나의 이야기’ 속에 숨어 있습니다.
자기 이야기의 힘: 기억을 말할수록 치유가 시작된다
사람들은 왜 아픈 기억을 이야기하라고 할까요? 단순히 위로받기 위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이야기하는 행위 자체가 치유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억은 단단하게 고정된 것 같지만 사실 매우 불안정합니다. 특히 트라우마 기억은 뇌 속에서 조각나거나 과장되고, 때론 왜곡되어 저장됩니다.
심리 치료에서는 이런 기억의 조각을 하나하나 꿰어 맞추는 과정을 통해 기억을 정리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을 합니다. 내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 어떤 일이 진짜 벌어졌는지, 그 당시의 감정과 생각을 차근차근 꺼내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뇌는 트라우마 기억을 더 이상 현재의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고, 서서히 떠나보낼 수 있게 됩니다.
해마(hippocampus)는 장기기억을 저장하는 뇌의 부위입니다. 그런데 입 밖으로 기억을 꺼낼 때마다 이 해마는 기억을 다시 불러와 수정합니다. 즉, 이야기할수록 뇌는 그 기억을 재정리하고, 결국 치유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살아남은 나'를 꺼내는 치유의 기술
많은 사람들은 “그 일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고통스럽고, 두렵고, 창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큰 소리로 말해야 합니다. 말하지 않으면, 그 기억은 마음속에서 더 커지고 무서운 괴물처럼 자라납니다.
이야기를 꺼내는 건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자신을 돌보는 가장 강력한 방법입니다. “그때 나는 어떻게 살았는가?”, “무엇이 나를 버티게 했는가?”, “그 상황에서 내가 지켜낸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다 보면, 결국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진실을.
그리고 이 진실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회복의 시작점입니다. 내가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당신이 쌓아온 모든 노력의 증거입니다. 슬퍼도 괜찮고, 지쳐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회복을 위한 다음 걸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기억하기
우리는 때로 ‘이제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에 빠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C-PTSD가 만든 감정의 왜곡일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분명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사람, 당신의 손을 잡아줄 사람이 있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건 약함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용기입니다.
상담센터나 정신건강복지센터, 온라인 심리 지원 프로그램 등을 통해 처음 한 걸음을 내딛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특히 복합 트라우마 전용 치료법(예: EMDR, 내러티브 노출 치료 등) 은 국내외에서 검증된 회복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있습니다.